내 삶의 별 것 아닌 목표 중 하나는, 할리의 오너가 되는 것이었다. 바이커는 ‘젊음이라면 한 번쯤 가져봐야 해’ 싶은 이미지였고, 그 정점에 있는 것이 할리였다. 생각으로만 끝날 법 한 일이었지만 정말 생각으로만 끝날까, 영 살 맛이 나지 않던 때에 반 충동적으로 입양해버린 것이 뽈뽈이다. 가슴을 울리는 할리는 아니지만, 매뉴얼 입문용으로는 쓸만한 녀석이었다. 덩치는 거대하지만, 125cc 밖에 되지 않는 민망한 배기량 때문에 자조적으로 지어준 애칭이 ‘뽈뽈이’ 다.
스쿠터와 바이크의 큰 차이는 자동차로 치면 스틱과 오토의 차이다. 땡기면 나아갈 뿐이냐, 기어를 넣어줘야 하느냐의 차이. 반 충동적으로 지른 뽈뽈이를 입양한 곳은 수유였나 미아였나, 어쨌든 저 먼 강북이었다. 매뉴얼 바이크를 타본 적이 없다는 말에, 파는 사람의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받으며 지하주차장을 몇 바퀴나 돌았지만, 운전 실력은 여전히 꽝이었다. 인도에서 제자리 꿍, 신호에 걸릴 때 마다 시동 꺼먹기를 수 십번 반복하고 나서야 동네인 신도림에 도착했다. 사서 고생인데도, 익숙한 동네에 도착했을 때의 그 성취감이란. 그렇게 개고생을 하면서 데려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년 3개월이 지났고, 14,000km 가량이였던 주행거리는 18,000km 가 넘었다.
그간 멀리는 아니지만, 많은 곳을 함께 다녔다. 학교에 늦을까 아슬아슬 할 때 마다 뽈뽈이는 등교시간을 단축해 주었고, 월요일마다 독산동 테니스장에 갈 때에는 든든한 이동수단 이었다. 나름 여자친구를 태우고 데이트도 해봤으며, 집에 오는 길, 괜스레 꽁기한 마음에 낙산공원을 올라가기도 했다. 아, 순석이와 함께 홍대에서 광화문까지 월드컵 응원을 갔던 것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애니미즘인지 뭔지, 기계따위에 불과한데도 내 옆을 지키던 것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짠한 마음이 든다. 2013년 9월, 여름의 기운이 덜 가셨을 때. 겨우 시동을 꺼먹지 않을 정도로만 기어를 넣는 것이 익숙해 졌을 때. 반팔티, 반바지 차림으로 뽈뽈이 위에서 쨍한 햇볕을 받으며 느꼈던 해방감은 아마 평생 내 머리 속 한구석에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비록 꿈에 그리던 할리는 아니었지만, 뽈뽈이는 충분히 좋은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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