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사랑(부조리한 자유)
좋게 말하자면 여백이 많은 영화였고, 나쁘게 말하자면 지루한 영화였다. 무언가 생각해볼 여지를 많이 던져주는 영화여서 좋았다. 비가 오는 날, 혹은 흐린 날에 잘 어울리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영화를 본 후 청운관 밖으로 나가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영화에서 표현되는 천사는 내가 생각하던 천사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었다. 뭐, 어차피 천사라는 개념 자체가 충분히 추상적인 것이므로 어떻게 표현하던지 감독의 마음이리라. 영화 속의 천사들은 나의 천사들보다 무기력했다. 지하철의 비관적인 남성에게 희망을 심어준 것이 그들이 세상에 영향을 미친 유일한 장면으로 기억한다. 그들은 인간의 생각을 읽지만 마음대로 바꾸지는 못하는 것 같다. 자살하는 사람을 보면서 그들은 '안돼!' 라고 소리칠 뿐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들은 영원을 산다. 산다는 표현보다는 시간 속에서 유영한다는 표현이 맞을것 같다. 그렇게 그들은 사람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면서 시간 속에서 영원히 흘러 다닌다.
천사 '다미엘' 은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인간이 부조리함을 맞닥뜨리는 것을 아주 긴 시간 동안 보아온 존재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 부조리에 자신도 부딪혀 보기로 결심한다. 카뮈는 산다는 것은 부조리를 마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것 같다. 내가 카뮈의 부조리함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은 부조리한 존재라는 것에 공감은 할 수 있었다.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욕망하므로, 항상 결핍된 존재이다. 우리는 살지만 절대적인, 곧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의미는 찾을 수 없다. 혹자는 종교 따위에서그런 것을 찾지만, 까뮈에게 그것은 비약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무의미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해결될 수 없는 부조리함일지라도, 그것에 저항하는 그 행위와 사고 자체가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 저항하는 것이 곧 사는 것이다. 다미엘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는 영원한 시간 속을 '유영하는' 것을 포기하고 순간을 '사는 것' 을 택한다.
나는 사르트르의 철학을 얕게 접했지만, 그의 철학에 깊이 공감했다. 카뮈의 철학도 사르트르의 철학과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삶의 의미'에 대한 회의는 두 철학에서 모두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누군가 철학을 전공해서 무엇 하냐고 물으면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한다. "특별히 할 것이 없다는 것은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아무거나 할 수 있는 것이지". 절대적인 '삶의 의미' 가 없다면 나름의 것을 정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미엘' 은 이 삶의 의미를 '사랑' 에서 찾은 것 같다. 그리고 한번 살아보기로 결정한다. 과연 다미엘은 행복했을까? 시간이 지나 사랑이 식은 후에는 존재의 부조리함에 괴로워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실된 사랑을 했던 그 순간만큼은 의미가 있는 것이리라. 감독이 왜 부조리함 없는 천사들의 세계를 삭막한 흑백으로 처리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우리 세계와 존재는 부조리해서 재미있고, 또 한번 살아 볼만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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