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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아메리칸 뷰티 American beauty(1999), 억압받는 현대인의 군상들

SGZ 2012. 1. 4. 20:53





  중학생 때, 신도림역에서 이 포스터를 본 기억이 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기억이 아직도 나에게 생생하다. 포스터만 보고 나서 대단히 야한 영화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략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드디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단순히 야한 영화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억압하는 현대인의 군상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비정상적인 구석들을 지니고 있다. 무기력한 가장, 돈이 최고인 엄마, 열등감에 찌들어사는 딸까지. 주인공의 가족 뿐만이 아니다.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공통점이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모두가 '불행하다' 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어떤 부분들을 억압하고 숨긴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자연스러운 어떤 모습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이 말이다.
아, 한 커플만 빼고. 게이 커플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유일하게 정상적인 사람이다. 통념상 비정상적인 게이가 유일한 정상인들이라니, 역설적이지만 영화 상에서 그것은 분명히 사실이다.


억압을 풀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 고 했던가. 자신을 아는 것이 쉬운 것이라면 이런 말을 남기지도, 이런 말이 명언으로 인정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 제대로 모르고 산다. 주인공 역시 그런 인물이다. 자신이 자신을 억압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그렇게 자신을 다른 모습으로 덮어 씌우고 부인을 외조하던 도중, 주인공은 마약 딜러로 일하는 옆집 청년과의 만남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다. 옆집 청년은 해병대 출신의 아버지에게 억압받는 존재이다. 그러나 청년은 그 억압 속에서도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꿋꿋하게 지켜간다. 아마도 이 인물이야말로 감독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모습이리라. 청년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주인공은 그제서야 자신이 자신을 억압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킨다.


균형

 '내가 그래도 되나?' 하는 것은 흔한 걱정이다. 현대인으로써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사회적 역할들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역할들은 복잡한 사회적 자아를 형성한다. 그 사회적 자아는 진정한 자아를 감시하며, 그에 맞지 않는 모습은 억압한다. 이것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지극히 '이성적인' 모습이다. 이제 주인공은 이런 사회적 자아를 모두 벗고 마음이 인도하는 대로 따른다. 회사를 때려 치우고, 자신을 무시하던 부인에게 큰소리를 친다. 가지고 싶던 자동차도 샀다. 그러한 모습은 전보다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보는 것은 즐겁다. 아마도 우리 역시 억압받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모습에서 대리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마음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이 결여된 감성은 충동일 뿐이다. 그렇게 고대하던 딸의 친구와의 성관계를 눈앞에 두고, 그는 이성을 되찾는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까지 놓친 진정한 아름다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이었는지 깨닫는다. 그것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성과 감성, 사회적 자아와 진정한 자아, 그 사이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 현대인의 삶은 결코 쉽지 않다. 현대를 살아가는 당신, 당신 또한 영화에 나타난 결함있는 등장인물의 모습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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