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신형철 산문

SGZ 2023. 11. 11. 20:38

  뭐랄까, 너무 힘든 시기에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이라는 슬픈 제목에서 끌린 책이다. 글쓴이는 평론가인데 여느 작가 못지않게 글솜씨가 좋은 것 같다. 좋은 글들을 많이 읽어서 그런가. 정치색을 짙게 띤 부분에서는 굳이... 싶은 생각도 들고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필력과 사유가 돋보이는 좋은 책이었다. 

 

하이라이트

  • 사람도 그렇지만 글쓰기도 그렇다. 시간을 주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안 준 것이다.
  •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 "거대한 고통은 정체되어 있다가 이완의 순간에 터져 나오는 법이다. 이 시종을 본 순간이 바로 그 이완의 순간이었다." 예컨대 별안간 부모의 초상을 치르게 된 사람이 미처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장례식을 치르고 집에 돌아와서는, 현관에 놓인 부모의 낡고 오래된 신발 한짝을 보고 비로소 주저앉아 통곡하게 되는 상황 같은 것일까.
  • 제대로 아는 사람많이 '제대로 앎' 그 자체로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 
  • 당신의 고통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는 말은 얼마나 잔인한가. 우리가 그렇게 잔인하다.
  • 상처와 고통의 양을 저울위에 올려놓는 일이 비정한 일인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비정한 일은, 네가 아픈 만큼 나도 아프다고, 그러니 누가 더 아프고 덜 아픈지를 따지지 말자고 말하는 일일 것이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덜 아픈 사람이다.
  • 인간은 본래 슬픈 짐승이고, 우리는 모두 슬픔의 식민지가 아닌가. 이런 생각에 저항하는 일이, 요즘의 내게는 예전만큼 쉽지가 않다.
  • 폭력이란? 어떤 사람/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
  • 우리는 자유롭다고 믿는 순간 바로 그 믿음에 갇힌다.
  • 인간은 무엇에서건 배운다. 그러니 문학을 통해서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철저하게 배운다. 그때 우리는 겨우 변한다. 인간은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바뀌는 존재이므로 나를 진정으로 바꾸는 것은 내가 이미 행한 시행착오들 뿐이다. 간접체험으로서의 문학은 다만 나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가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를 '파악' 하는데 도움을 주기는 할 것이다.
  • 공허한 삶을 '의미' 로 채우기 위해서는 이용할 무엇이 필요하다. 나에게 할 일이 있다는 것, 그 일을 할때 나는 중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살 가치가 있다는 것... 그런 느낌이 우리를 사로잡을때 삶은 얼마나 충만해지는가.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태극기 집회는 정치적 저항이라기보다는 존재론적 축제일지도 모른다.
  • 우리 시대 서바이벌리즘의 전도사들은 반문하리라. '정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는 릴케의 시 따위를 도대체 왜 읽어야 한단 말인가?' 나의 오랜 대답은 이렇다. '왜냐하면 삶이란 의미를 찾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그 순간에만 겨우 의미를 갖기 시작하는 것이니까.'
  • 단호한 승리도 단호한 실패도 없다. 오로지 그렇다는 사실만이 단호할 것이다.
  • 정치의 시대에 지식인들의 말에는 귀담아 들을만한 것이 있었다. 그러나 경제의 시대에 그 역할을 하는 것은 각종 투자 전문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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