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았지만 베이컨의 회화에 대한 들뢰즈의 해석을 들었다. 그에 이어 오늘은 베이컨의 삶에 대해서 더욱 심층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역시 기대했던 만큼 뒤틀리고 꼬인 일생을 거친 사람이었다. 사실 저번 시간 발표를 들을 때는 베이컨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었다. 조지 다이어 라는 남자를 사랑했다 는 맥락에서 자연스레 여성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베이컨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사실만으로도 꽤나 ‘보통 사람’ 은 아니구나 싶었는데 오늘 그의 삶이 정말 순탄치 않았음을, 어째서 일반인과 이렇게도 다른 삶의 궤적을 지닐 수 밖에 없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신기한 구석도 있다. 흔히 예술가라고 하는 사람은 왜 이다지도 비정상적인 삶의 궤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까?
나의 추측이지만 추상적인 예술을 하는 예술가들 일수록 사실주의적인 예술가들에 비해 비정상적인 삶의 궤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은 ‘왜 추상화가들은 추상적인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었을까?’ 라는 의문에서 추론 했다. 시각적 사실 재현의 결정적 기술인 사진의 발명이 화가들로 하여금 추상화를 그리게 등을 떠민 측면도 있겠지만 그 외에 다른, 조금 더 본질적인 요인을 생각해 보았다. 예술가라면 당연히 무언가 표현하고 싶은 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술가는 그 표현하고 싶은 바를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을 사용하여 표현할 것이다. 표현하고 싶은 바는 세상의 어떤 모습일 수도 있고, 인간의 아름다움/추함 일 수도 있고, 인간의 감정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의 표현 방법은 음악, 문학, 구상화, 추상화 등 무한한 것들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구상화를 그린 화가들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것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시각적 현실의 재현을 사용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이전의 사람들, 혹은 나처럼 예술적 식견이 없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통 그림의 표현 방식’ 인 것 같다. 그러나 추상화를 그린 화가들은 거기에서 부족함을 느꼈기에 구상을 벗어나 추상으로 향했을 것이다. 구상으로 충분한 것이면 굳이 추상으로 향할 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추상화가들의 삶은 아마도 분명 순탄치 않은 면면들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구상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므로. 그리고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구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이기에, 표현을 위한 방법으로 언어적 요소가 적어 추상으로 향하기 좋은 미술이나 음악 등을 주로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한 학생이 ‘베이컨의 작품은 감각의 여러 층위의 집약적 표현’ 이라는 부분에 대해 질문했던 기억이 난다. 그 부분에 대해 옳은 분석일지는 모르겠지만 베르크손의 철학, 베이컨의 작업실, 작업 형태와 관련하여 내 나름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일단 베르크손의 철학에서 배웠듯 감각, 혹은 감정은 언어적으로 분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뉠 수 있는 것은 공간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감각과 감정 같은 것들은 공간적으로, 분절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지속 안에서 전체로써 존재한다(내가 옳게 이해하고 표현한 것인지는 확신을 못하겠다). 베이컨이 이러한 철학적 배경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작업 형태는 이러한 베르크손의 철학을 바탕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베이컨의 작업실은 그의 삶처럼 무질서하고 혼잡하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 그는 그 무질서와 어수선함을 좋아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작업을 할 때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그림이 나를 그리는 것인지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인지 구별이 안 되는, 주객이 구별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작업과 나, 삶과 작업이 하나가 된 것이다. 그러한 것을 ‘혼을 담았다’ 고 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그의 삶 전체를 반영한다. 어떤 이성적인 서사가 아닌 감각과 감정의 순간적인 솔직한 표현은 베르크손이 말하는 지속으로써 나뉘고 분절될 수 없는 삶, 감정 그리고 감각의 총체적인 표현이다. 나는 베이컨의 작품이 감각의 여러 층위의 집약적 표현이라는 부분을 이렇게 이해했다.
이렇게 짧은 기간이었지만 프란시스 베이컨이라는 화가와 들뢰즈라는 철학자의 분석을 연결해서 배워 보았다. 다른 것 보다도 가장 뿌듯한 점이라면 미술적 식견이 한 단계 높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발전할 만큼 발전해서 영상 속에서라면 새로운 현실의 창조까지도 가능하다. 사진과 동영상이 이렇게 흔한 세상에서 구상화가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그러나, 사진으로는 표현 불가능한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부분들이 바로 그러한 부분들이다. 행복, 절망, 인간의 잔혹함, 슬픔, 고통과 같은 것들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공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사진 혹은 구상을 통해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미술, 추상화, 음악과 같은 것들은 그런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으로 보인다.물론 이 부분도 확신할 수는 없다. 미술 그리고 음악 역시 인간의 감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임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러한 것으로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것들을 나타내는 것이 가능이나 한 것 일까.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단순한 현실 재현의 예술 보다는 추상적인 방법들이 정신적인 가치들의 본질에 더욱 다가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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