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라고 했다. 곱씹을수록 의미심장한 말이다. 알면 알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모른다. 말콤 글래드웰의 <블링크>를 다 읽었다. 직관적인 결정의 중요성을 말한 책으로, 의식적인 판단 너머에서 일어나는 무의식적인 판단의 강점과 중요성, 맹점을 논한 책이다. 예시들이 기억해 놓으면 좋을 것 같아서 잠시 옮겨 적는다.
* 치밀한 과학적 분석 끝에 진품으로 간주된 고미술품이 한눈에 모조품으로 판별된다.
* 15분간의 대화 관찰로 결혼생활의 롱런 여부가 판단된다.
* 의사와 환자 사이의 짧은 대화 한 토막으로 의사가 고소당할지 여부가 판명 난다.
* 테니스선수의 순간적인 서브 동작에서 더블폴트 여부가 감지된다.
* 온갖 첨단 장비와 기술들을 동원, 분석하여 구상한 작전이 본능적인 판단에 일거에 무너진다.
위와 같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그러한 통찰력에 대해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말 그대로, “딱 보니 그런 것이다.” 그 판단은 의식적이고 논리적인 부분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부분과 경험적인 부분까지 통합되어 내려지는 결정이다. 의식적인 부분을 넘어, 무의식적인 부분까지 다듬고 벼리는 것이 진정한 전문가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이론과 실제의 차이, 일만시간의 법칙, 짬밥을 먹는것이 왜 중요한지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알면 알수록, 무의식은 정말 무시무시하다. 통제하지도, 의식하지도 못하지만 나의 대부분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좀 무서워 진다. 의식과 무의식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사람은 컴퓨터가 아니다.” 라는 말은 내가 종종 쓰는 말이다. 컴퓨터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기계다. 인풋을 넣으면 그에 합당한 아웃풋이 나온다. 그것이 컴퓨터의 작동 방식이다. 사람의 작동방식은 그것과 다르다. 이성적인 부분은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빙산의 일각이다(그나마도 제대로 논리적이지 않다). 알면 알수록, 우리는 수면 아래 빙산의 거대한 부분에 더욱 강하게 지배 받으면서 산다. 이것이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알기 힘든 이유이다. 자기 자신도 알기 힘든데 타인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옛 말 틀린 것 없다고,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정말 알기 어렵다.
‘인사이트(통찰력)’ 라는 말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인간은 행동을 한다. 이성적인 부분은 항상 이러이러한 이유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근거를 찾는다*. 그러나 그러한 근거는 상당 부분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 심층에는 더욱 거대한 무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표면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그 표면적인 관찰에서 그치지 않고, 그 관찰을 통해 사람들의 깊은 무의식적 동인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인사이트’ 를 찾는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알면 알수록 사람은 참 알 수 없다.
*현대 뇌과학에 대해 논하는 마이클 가자니가의 <왜 인간인가?> 라는 책에는 인간의 선택과 관련한 상당히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나와있다. 좌뇌와 우뇌의 연결다리 역할을 하는 뇌량이 끊어진 환자들이 있는데, 그러한 사람들을 통해서 좌뇌와 우뇌의 역할을 분리해볼 수 있었다. 핵심만 요약하면, 이성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좌뇌는 모든 것에 대한 나름의 근거를 찾으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말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말이다. 컴퓨터의 명령으로 웃게 된 사람은, 왜 웃었냐는 질문에 “지금 이 상황이 재미있다” 고 설명했다. 사실은 컴퓨터의 명령에 따른 것에 불과함에도 말이다. 고리타분하지만 유명한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 이라는 상식 안에서 생각하면, 사람은 이성적인 분석 후에 그것을 따르는 동물이다. 그러나 이 실험은 꼭 그렇지만은 않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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