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상/etc.] 프란시스 베이컨, 그리고 추상화의 이해

SGZ 2014. 4. 9. 03:47



             2008 9, 군대 가기 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오르셰, 루브르를 비롯해서 많은 유명 미술관, 박물관들을 돌아봤고 수 없이 많은 유명 미술작품들을 봤다. 큰 기대를 가지고 떠났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반 고흐, 에두아르 마네, 르누아르와 같은 역사적 화가들의 세계적 명화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니... 과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작품이라는 것들은 나에게 어떤 감명을 줄 것인지! 그러나 아쉽게도 감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 이었을까. 미술사, 미학, 예술에 대해 거의 문외한 수준이었던 나에게는 대작들의 가치가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의 예술적 식견은 딱히 늘어난 것이 없다. 그러한 상태에서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과 질 들뢰즈의 해석을 접했다.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참 어렵다. 아플라와 같은 개념을 이해하기에는 나의 배경 지식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그러나 부족할지라도 내 나름대로의 느낀 점을 한번 적어보려 한다.

             프란시스 베이컨 작품의 첫인상은 불쾌함이었다. 나같이 일반적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예술의 관념은 아름다운 것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베이컨의 작품은 정 반대의 방법으로 충격과 감명을 준다. 그의 작품은 불쾌하고 강렬하다. 많은 그의 작품들의 모티브는 고기 덩어리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생각해보면 고기덩어리는 그 자체로 썩 유쾌하지 않은 대상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가공된 고기덩어리는 몰라도 가공되지 않은 채의 고기 덩어리를 보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고기덩어리 속에서 어떤 죽음의 흔적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먹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 한 생명체를 이렇게 죽이고 갈라 놓은 현실을 마주하는 것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러한 부분은 특정 사람들에게 맡겨놓고 없는 일인 듯 덮어놓는다. 마치 그 고기를 먹기 위한 생명체의 죽음은 없었다는 듯이. 프란시스 베이컨은 그러한 고기덩어리들을 작품 전면에 내세운다. 거기에 덧붙여 그 고기덩어리들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한다. 그는 말한다.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굴지만 너희도 너희가 그렇게 먹는 고기덩어리들에 불과하다!” 이런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는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느낌의 전달은 추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다. 현실에는 이렇게 강렬한 인상의 장면들이 매우 흔치 않기 때문이다.


 윌리앙 아돌프 부그로 - 「비너스의 탄생」 앞에서


          나는 예술의 조예가 얕았다지금 돌아서 진단해보면 예술을 기술과 구별하지 못했던 것 같다그래서 애들이 마구 끄적거려 놓은 것과 언뜻 구별이 되지 않는 추상화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위의 사진은 오르셰 미술관을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윌리앙 아돌프 부그로는 신화를 바탕으로 한 사실주의적 작품을 많이 남긴 화가이다오르셰 미술관의 수 많은 추상적인 명화들을 봤지만 추상화의 의미를 몰랐기에 나에게는 사실주의적인 작품이 눈에 가장 띄었다이번에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과 해설을 접하면서 추상화가 어떤 것인지추상화가 구상화와는 어떠한 차이점을 가지며어떻게 다른 가치를 갖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현실을 재현하는 것은 현실의 법칙현실의 모습을 벗어날 수 없기에 인간에게 어떤 감명을 전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반면 추상화는 현실의 특정 부분에 집중하여 우리에게 보인다현실을 왜곡함으로써 현실의 진짜 모습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하는 것이다나는 이러한 부분에서 앨리스 시리즈그리고 베르크손의 철학과 나름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앨리스는 기존의 동화그리고 이야기는 어떠해야 한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났다그렇게 함으로써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고 그 결과 세계적인 명작으로 남았다베르크손의 철학 역시 그렇다기존의 철학들이 어떤 시공간의 가정 속에서 시작한 반면 베르크손의 철학은 그 사고의 틀을 뒤집는다추상화도 그러한 부분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들이 있다현실을 단순히 반영하는 구상화는 시각적 현실의 재현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여기서 시각적 현실은 기존 동화의 선입견이며기존 철학의 시공간에 대한 관념이다추상화는 시각적 현실의 재현을 포기하고 그것을 왜곡함으로써 현실의 특정 양상에 집중할 수 있다마케팅적 언어로 풀어보자면 시장을 세분화해서 특정 시장을 선택하고 그에 집중하는 것이랄까.

             이러한 추상화의 이해를 바탕으로 이해되는 다른 부분이 있었다구상화를 추월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한가지는 추상적 형태를 취하는 것이고다른 하나는 형상곧 추상적인 형상으로 향하는 것이다전자인 추상적 형태를 취하는 것은 형상에 개의치 않고 추상으로 향하는 것으로 이해했다예를 들면잭슨 폴락의 작품이 그렇다캔바스에 말 그대로 무작위적으로’ 물감을 뿌려놓은 그의 작품은 형상에 구애 받지 않고 추상의 극단으로 치닫는다후자인 형상으로 향하는 추상적 방식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이 그렇다현실을 변형시킨다는 점에서 전자와 후자는 공통점을 갖는다그러나 전자는 형상에 구애 받지 않고 추상으로 향하는 반면후자는 형상을 변형하지만 유지하는 방식으로 추상으로 향한다예를 들어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은 추상화로 보이지만 중심 형상 자체는 항상 존재하며 유지된다비록 그것이 뒤틀리고 변형된 것이라도 말이다추상화를 처음 접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나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추천해보고 싶다베이컨의 작품은 형상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표현되기에 형상 자체를 지워낸 추상화 작품들에서 오는 그냥 도무지 모르겠는’ 당혹감은 오지 않을 것 같다때문에 나처럼 아직 추상화를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비교적 쉽게 감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배운 것들과 그것들을 통해 느낀 점을 간단하게 서술해 보았다꽤나 난해한 내용이라 쉬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지금 다시 돌아보니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추상화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적 예술들의 가치를 이해할 수 없었던 나에게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보고 감상해야 할지 나름의 준거 틀이 형성된 것 같아서 기쁘다뒤늦게 지난 유럽여행에 큰 아쉬움이 남는다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다시 한번 공감하면서 추상화구상화를 불문하고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식견을 기르고 싶다그러한 식견이 길러진 뒤에다시 한번 세계의 명작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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