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독일 철학자 사상 정리/요약 (엑카르트, 뵈메, 쿠자누스, 라이프니츠)

SGZ 2013. 6. 11. 02:11




엑카르트

★신/신성의 구별

- 엑카르트의 신

엑카르트에게 신은 일반적 사물에 부여하는 '존재' 의 의미로 정의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일종의 무無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무로서의 신은 굳이 말하자면 '하나' 로 특징지을 수 있다. 하나로서의 신이라는 말은 곧 무차별적이라는 의미이다. 무차별적이라는 점에서 하나로서의 신은 배타적인 '절대자' 의 의미가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전체' 라는 의미를 지닌다. 신은 이렇게 다른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점에서(비타자성) 다른 모든 것들과 구별된다.

- 신/신성 구별

이러한 하나로서의 신의 성격을 더욱 뚜렷이 구별 짓기 위해 엑카르트는 신과 구별해 신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신은 활동을 하지만 신성은 활동 하지 않는다. 신성은 가장 근원적인 토대로서의 신이다. 신성은 로고스의 형태로 자신을 드러낸다. 이는 플로티누스의 일자/Nous 와도 유사하다.

-신/인간 합일

엑카르트 신비주의 이론의 핵심은 신과 인간의 합일을 넘어서서 근원적 일치와 동일성을 주장한다는 데 있다. 신은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신적인 경지에 이르러 체험해야 하는 존재이다. 하느님을 알려면 하느님이 되어야 한다. 신과 인간의 동질성의 근거는 둘 다 이성적 존재라는 것이다. 신의 모상으로서 인간의 본성 또한 지성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신과의 합일은 객관적 존재로서의 신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내면을 바라봄으로써 이루어진다. 일상 속에서 신성의 인식이 어려운 것은, 외적 사물에 대한 관심과 집착으로 인해 내면에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외부세계와 철저한 단절을 의미하는 '초탈' 이 필요하다. 초탈은 자기 의지 중심의 소유욕과 집착의 포기를 의미한다.



뵈메

★신비주의적 범신론

- 범신론

뵈메는 신비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이를 범신론적으로 극단화한다. 만물이 신이며 신이 곧 만물이라는 것이 그의 사상의 핵심이다. 곧,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이 하나라는 것이다. 뵈메에게 하느님은 자연 속에 있는 것이지, 지구와 태양처럼 위/아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자연 속에는 모든 것이 <하나>를 향하고 있다.

- 악의 문제

이렇게 만물에 신이 내재해 있다면 한 가지 문제점을 제기할 수 있는데, 그것은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뵈메는 이를 헤라클레이토스와 유사한 방식으로 설명한다. 자연은 선과 악의 융합체이며, 모든 자연물에는 선과 악의 두 원리가 공존한다. 이런 의미에서 선의 부정으로서의 악은 필연적이다. '선'이라는 것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악'역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 의지

첫 단락에서와 같이 뵈메에게는 신이 곧 인간이며, 인간이 곧 신이므로, 인간의 의지는 곧 신의 의지이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고, 신마저 이를 전적으로 제압할 수는 없으므로 신이 행하는 것도 결국 인간이 원하는 것을 행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신으로부터의 원천적 상태이며, 의지야 말로 신과의 가장 깊은 통일적 연원이다. 이를 통해 신비주의가 결국 자유주의, 인간주의로 이르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쿠자누스

- 무지의 지, 박학한 무지

쿠자누스에 따르면 인간의 지는 근본적으로 불완전하고, 엄밀히는 무지에 가깝다. 인간이 무언가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과의 비교를 통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완전하고 정확한 인식이란 없다. 그러므로 신에 대한 인식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신은 무한자이며, 우리는 무한자에 대해 알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무한하다는 것' 에 대한 앎은 가질 수 있다. 즉, 신 자체는 인식할 수 없지만 신의 흔적은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의 무지는 '무지의 지' 혹은 '박학한 무지' 이다.

- 무한자인 신

그러한 무한자이자 하나인 신 속에서는 모든 것이 통일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신 속에서는 구별과 차이가 존재하지 않으며, 모순과 대립이 해소된다. 신은 절대적인 최대치이자 하나로서 모든 모순적인 것들을 능가하면서 단일하게 존재한다. 신은 가능한 최대치이자 또한 최소치로서 신에게는 더 큰 것도, 더 작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 속에서는 최대치와 최소치가 일치하며, 대립이 해소된다. 이러한 대립의 일치는 신의 무한성에 근거한다. 쿠자누스는 이를 수학적으로도 설명한다. 가령 삼각형의 한 변이 무한히 길어지면 그것은 직선이 되며, 그 직선은 삼각형을 함축한다. 무한히 큰 원에서는 곡선과 직선이 일치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 이 세계

무한자로서의 신은 전능해야 하므로 논리 상 무한하고 완전한 세계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경우 세계는 제 2의 신이 되므로 두 개의 신이 되는 것이다. 이는 하나로서의 신관에 위배된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불완전/유한한 세계를 만들되 이 세계 안에 완전자인 신과 같은 존재가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이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는 유한한 무한성의 의미를 지닌다.

- 인간

무한에 대한 관념을 지니는 인간의 창조 정신은 신의 무한성의 상징이다.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해 신적인 것을 자기 안에서 발견하고 완전한 인간으로 나아간다. 인간은 신의 뜻이 구현된 이 세계를 인식하는 자로서 고유한 존재 의미를 지닌다. 이를 토대로 인간은 기호와 상징을 통해 실재를 새로이 개념화해 파악한다. 이는 제 2의 창조 행위에 비견된다. 이런 점에서 쿠자누스는 "인간이 제 2의 신이다" 라고 말한다.



라이프니츠

- 모나드란 무엇?

라이프니츠 사상의 핵심은 모나드 개념을 통한 세계 구성요소로서의 영혼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정당화이다. 이는 데카르트의 실체 개념에 대한 비판적 반성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는데, 물체는 무한 분할 가능한 것으로 궁극적 실재로 볼 수 없다. 무한 분할이 가능하다는 것은 결국 어떤 실재도 남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물체를 배제하고 사물의 최종적 단위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물질이 아닌 영혼이다. 이러한 영혼으로서의 실체를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라고 부른다. 모나드는 단순한 것이며, 단순하다 함은 다시 말해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부분이 없는 것은 분할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모나드들은 진정한 원자이고, 사물의 요소이다.

- 모나드의 특성

모나드의 핵심적 기능은 데카르트처럼 사유가 아닌 지각이다. 모나드는 개별적이고 무수한 모나드가 있으며, 이 모나드들은 지각의 명료성에 따라 위계질서가 정해진다. 인간의 모나드는 명석하고 분명한 지각 활동을 하지만, 아직 불완전한 면이 있으며, 신의 모나드는 최고의 완전하고 명료한 지각 활동을 한다. 개개 모나드의 근원은 신이며, 모나드는 자체 내에 근원적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모나드, 특히 인간의 모나드는 원칙적으로 자유롭다. 모나드들은 어떤 것이 안으로 들어가거나 나올 수 있는 창문을 갖고 있지 않다. 모나드들의 자연적인 변화는 내적 원리로부터 일어난다. 모나드들은 완전성을 갖고 있기에 엔텔레키(완성태)라 부를 수 있으며, 비 물질적인 자동 기계가 되는 일종의 자족성을 가진다.

- 예정조화, 세계, 인간, 자유의지

이러한 모나드들은 신의 예정된 조화로 인해 조화를 이룬다. 독립적인 무한히 많은 모나드들로 인해 우리는 가능한 한 최고의 질서를 갖는, 가능한 한 가장 큰 다양성을 얻게 된다.이는 곧 가장 큰 완전성을 의미한다. 영혼과 육체도 독립적인 모나드로, 상호작용하지 않지만, 신의 예정된 조화로 인해 조화를 이룬다.
신의 예정조화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는 존재한다. 신은 모든 것을 필연적으로 규정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렇게 될 것으로 예견하고 정확하게 짜 맞춘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자유 의지가 무제한적인 것은 아니다. 신은 가장 완전하고 최선의 세계를 이루는데 의미있는 행위만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신은 무수한 가능적 세계 중 하나의 최선의 세계를 존재하게 한다. 그러한 세계는 단순하면서도 가장 많은 존재자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계이다. 이러한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도덕 법칙의 근거가 된다.

- 변신론(악)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으므로, 악의 선택은 인간에 의한 것이다. 곧, 악을 자유의 대가로 허용하는 것이다. 라이프니츠가 보기에 이 세계엔 악보다 선이 더 많다. 악의 존재는 선의 가치와 필요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필요하기도 하다. 따라서 모든 세계들 중에서 가장 선한 세계도 악을 내포하게 된다.


반응형